기초과학연구원의 PRC 제도
2018년부터 기초과학연구원에서는 연구단장이 이끄는 큰 규모의 기존 연구단 형태와는 다른, 새로운 연구단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새로운 연구단은 PRC라고 불리는데 PRC는 Pioneer Research Center의 약자입니다. 기존 기초과학연구원의 연구단은 1~2명의 연구단장이 하나의 큰 연구단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형태였습니다.
PRC 형태의 연구단에서는 내부에 Chief Investigator, 약자로 CI로 불리는 여러 연구자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소규모 연구그룹을 만듭니다. 이 PRC 형태의 연구단의 연구단장은 거기에 속한 CI들이 돌아가며 맡기 때문에 PRC 자체는 여러 연구그룹을 모아놓는 우산과 같은 조직이 됩니다. 각 CI는 예산도 별도로 신청하여 받고 운영도 독립적으로 하지만, 같은 연구단 일은 같은 연구단 소속 다른 CI와 서로 협업을 통하여 운영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기존 연구단은 여러 연구팀으로 나누어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PRC에서는 각 연구팀을 CI가 맡아서 독립적으로 운영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CI를 한글로 어떻게 표시할 것인지에 대하여 의견 정리가 되지 않아서 한글 명칭은 없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CI는 “소규모 연구그룹을 구성하여 기초과학분야의 모험적이며 창의적인 연구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젊은 연구자”라고 정의하며, 이러한 지원을 통하여 “세계적 연구기관의 연구책임자와 대등하거나 혹은 가까운 미래에 이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큰 젊은 연구자에게 독립 연구를 지원함으로써 차세대 세계적 석학으로 육성”하겠다고 합니다. CI에게는 최대 연 10~15억원 예산의 연구그룹을 구성하고 독립연구를 수행할 권한을 부여합니다. CI는 출장비 등 여러 내부 규정에서 부연구단장에 준하는 대접을 받습니다. 참고로 CI가 받는 예산에는 CI 본인의 인건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과거와 달리 행정인력의 인건비는 제외되어 있습니다. 행정인력은 본원에서 직접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초에 처음으로 기초과학연구원에서 CI를 뽑겠다는 공고가 나왔습니다. 올해는 없지만 2018년에는 공개모집과 함께 추천 위원회(search committee)도 운영하여 후보를 추천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CI의 선정은 부연구단장에 준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제가 경험한 비공개 발표 평가에서는 필즈메달 수상자인 심사위원장과 함께, 누가 섭외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외에서 제 전공 분야 저명하신 학자분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서울에 오셨고, 국내에서도 제 분야 여러 원로 교수님들께서 참여하셔서 많은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공개 심포지엄, 비공개 발표 평가 등 엄정한 심사 과정을 거쳐 제도 시행 첫 해에 CI로 선정되어 매우 영광이고 귀중한 시간을 내어서 과정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
제도 첫 해인 2018년에는 총 3명의 CI가 선정되었습니다. 그 중 데이터 사이언스 그룹을 구성한 KAIST 전산학부 차미영 교수와 제가 수학 분야로 선정되었고, KAIST 의과학대학원의 김호민 교수는 생물 분야로 선정되었습니다. 김호민 교수는 혼자 속할 PRC 연구단의 이름을 “바이오분자 및 세포 구조 연구단”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습니다. 저와 차미영 교수는 여러 논의를 거쳐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Center for Mathematical and Computational Sciences)라는 이름으로 PRC 연구단 이름을 정하였습니다.
행정 업무를 위해서 본원 행정인력 중에서 파견받은 행정인력을 두 PRC 연구단이 공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원래 두 명이 배정되었으나 최근 한 분이 늘어나 총 세 분의 행정인력이 3명의 CI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채용이 진행되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리 및 계산 과학 연구단은 기초과학연구원 본원의 이론동 2층을 배정받았습니다.
이산수학그룹
이번에 시작한 연구그룹은 이산수학그룹, 영어로 Discrete Mathematics Group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약자로는 DIMAG이라고 정하였는데, DIMAG이 마침 힌디어로 두뇌라고 합니다. 홈페이지는 https://dimag.ibs.re.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부탁받고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아직 연구진이 갖추어지지 않은 연구그룹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아직 이산수학그룹이 시작된지 몇 달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산수학그룹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하였습니다.
- 이산수학, 그래프 이론 및 알고리듬 분야 분야의 세계적 연구를 수행
- 국내외 관련 분야 연구자들과의 협력 연구 촉진
- 관련 분야 세미나, 워크샵, 학회, 스쿨 등을 적극적으로 조직하여 연구 결과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미래 연구자들의 성장을 도움
첫 번째 목표를 위해서 현재는 연구진을 뽑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초기인만큼 주로 저의 관심분야에 가까우면서도 우수한 연구자들을 뽑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첫 박사후 연구원을 뽑는 공고는 2018년 12월 중순이 지원 마감이었는데, 짧은 홍보기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습니다. 서류 전형과 면접 전형을 거쳐 최종으로 3명의 연구자에게 오퍼를 보냈습니다. 고맙게도 세 명 모두 오퍼를 수락하였습니다. 3명 중 1명은 한국인으로 조합적 최적화를 전공하였으며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면서 박사후 연구원을 할 예정입니다. 나머지 2명은 극단적 조합론(extremal combinatorics)를 전공한 미국인과 인도인인데 둘 다 모두 그 분야에서 유명한 헝가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3명 모두 개인 사정상 여름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현재 4월 중순 마감으로 2차 모집 공고가 나갔습니다. 예산 상황 등을 고려하여 두 세 명을 뽑을 예정입니다.
출범되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벌써 2019년 3월말까지 4건의 Discrete Math Seminar를 개최하였습니다. 관심있는 분들께서는 얼마든지 오셔서 강연을 들으실 수 있으며, 제게 연락하시면 세미나 공지를 이메일로 받으실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첫 워크샵이었던 “2019-1 IBS Workshop on Graph Theory”는 이화여대 김연진 박사와 공동주관으로 2월 11일부터 12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개최하였습니다. 국내 3명의 연사와 함께 체코, 헝가리, 미국에서 온 세 명의 연사가 연구 발표를 진행하였습니다. 올 여름 인천에서 열리는 조합론 학술대회도 공동개최를 할 예정입니다.
한편 올해 프랑스 CNRS의 김은정 박사와 함께, 7월 말부터 3주동안 “2019 IBS Summer Research Program on Algorithms and Complexity in Discrete Structures”라는 이름의 여름 연구 프로그램을 개최합니다. 총 3주동안 관심사가 비슷한 연구자들이 기초과학연구원에 모여서 집중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려고 하며, 현재까지 14명의 해외 학자들이 2~3주씩 참가하겠다고 밝혀온 상태입니다.
올 가을에 해외에서 연구년을 이산수학그룹으로 오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내분들 중에도 1월에 이산수학그룹에 1주일 이상 방문하셔서 연구하신 분도 계십니다. 이산수학그룹에 방문하셔서 연구하시고 싶다면 연락을 주시길 바랍니다. 이산수학그룹이 내부 인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구환경
기초과학연구원 본원은 대전의 옛 엑스포과학공원 부지에 지어졌습니다. 바로 동쪽에 한빛탑이 있으며 한빛탑을 지나서 걸어가면 롯데시티호텔, ICC 호텔, 대덕특구게스트하우스 등 방문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충분히 있습니다. 바로 서쪽에는 현재 신세계 백화점 및 특급 호텔이 포함된 지상 43층의 신세계 사이언스 콤플렉스가 2021년 준공 예정으로 공사중입니다. 본원 건물에서 북쪽 방향에는 기초과학연구원의 게스트하우스 및 기숙사 형태의 숙소가 있어서 연구원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의 본원 건물은 2017년 말에 준공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제가 들어오던 12월 초까지도 이론동 2층 전체는 방문 달린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달동안 엄청난 노력 끝에 수학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환경을 어느 정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에서 Annals of Mathematics와 같은 수학 저널이나 미국수학회 MathSciNet을 인터넷을 통해 접속할 수 있게 된 것도 작년에 다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론동 2층에 위치한 커다란 칠판을 설치한 두 강의실에는 각각 동영상 촬영 장비를 설치하였습니다. 연사가 동의하는 경우 세미나 영상을 촬영하여 이산수학그룹 홈페이지 및 유투브에서 볼 수 있도록 올리고 있습니다.
수학 연구자들이 작은 그룹이나 큰 그룹으로 모여서 연구 토의를 할 수 있는 토론실이 작은 것 2개 큰 것 1개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 중 큰 것에는 3면 벽이 모두 유리보드로 되어 있어서 넓은 보드 공간을 사용하며 연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연구원들과 방문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연구실을 여럿 구축하였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 본원에는 과학문화센터라는 부속건물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큰 학회를 개최할 수 있는 강당 뿐 아니라 여러 작은 강의실도 많이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학기 중에는 강의 때문에 강의실 대여가 어려운데, 여기서는 강의가 없으므로 그러한 행사 개최가 좀더 쉽습니다.
당부말씀
이산수학그룹의 모든 활동은 이산수학그룹 홈페이지에 공지를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세미나나 워크샵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 부탁드립니다.
현재까지 기초과학연구원 본원 건물에 출근하는 수학 박사는 저 뿐입니다. 현재 저를 제외하면, KAIST 소속 제 대학원생 3명과 KAIST 소속 그래프이론 전공 박사후 연구원이 이산수학그룹의 연구실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리 분야의 경우 이론물리 분야 연구단 2개가 이론동 3층의 절반, 4층의 절반을 쓰고 있고 실험 분야도 있습니다. 물리 분야 이론 연구단들은 서로 티타임도 돌아가면서 하고 물리 분야 콜로퀴엄도 개최하는데, 수학은 아직 기초과학연구원 내에 사람이 적어서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2019년에도 두 번째로 연구단장과 CI를 뽑는다는 공고가 나왔고 마감이 이미 끝난 상황입니다. 하나의 PRC 연구단에 5명의 CI까지 선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기초과학연구원 본원 이론동 2층에는 아직 빈 공간이 많이 있고, 앞으로 오실 분들은 이미 연구환경이 어느 정도 구축되어서 저보다 쉽게 시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수학자들이 기초과학연구원으로 옮겨오시거나 방문하셔서 자유롭게 연구에 몰입하며 함께 지낼 수 있길 기대합니다.
2019년 5월 발행된 KSIAM 소식지에 기고한 글이며, 작성 시점은 3월입니다.